• 최종편집 2025-05-22(목)
 

황금불탑의 나라, 미얀마의 <바간 왕국>

 

천불천탑 황금빛 째디들이 즐비한 나라,

매일 비손을 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 나라의 오랜 수도였던 <랑군(양곤)>,

우리나라 대통령과 장관들이 순방을 갔다가

아웅산 폭탄 테러를 당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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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지곤 황금대탑, 바간. [촬영=윤재훈]

 

바간 왕국,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는 천 불 천 탑을 쌓아 올리고 끝 간 데 모르게 국력이 번성했던 나라. 부서진 수많은 절터, 부처님, 째디, 이라와디강을 따라 덧없이 흘러온 천 년 역사, 너른 벌판에 부서진 테라와다불교의 잔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처럼 며칠 동안을 뙤약볕 아래에서 황톳길을 헤매어도 다 볼 수 없었다.

 

버마라고 부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미얀마라고 이름을 바꾼 나라, 한때 국력이 강성할 때는 이웃 나라 태국을 침공하여 아유타야, 쑤코타이 왕국의 번성했던 수많은 불교 유적들을 초토화시킨 나라.

 

그러나 달도 차며 이울 듯,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버마전쟁에서 패배한 직후부터 동인도 회사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고, 결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떨어진 나라.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잠시 동안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그러다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고 우리보다 약간 늦은 1948년에 독립을 쟁취한 나라. 그러나 1962년 네윈 주도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수립된 나라.

 

미군들처럼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사는 군인들의 나라, 어느 날 아침 국민도 모르게 깜작 쇼처럼 수도를 <네피도>로 옮겨버린 나라, 그래도 외적으로는 조용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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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웅 산 수치 [사진=나무위키]

                         

독립 이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버마족과 소수 민족 간의 그치지 않는 전쟁, 여기에 소수 민족 간에 대한 갈등으로 종교적, 민족적 충돌까지 심한 나라, 공공연히 서방이 지원하는 샨족은 나라의 반에 분포하면서 자체 군대까지 보유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는 나라.

 

2010년 군부의 지원을 받은 통합단결발전당이 승리를 거두자 2011330일 군부가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권력을 넘겨주는 듯했다. 오랜 기간 가택 연금 중이던 아웅산 수치도 풀어주자 세계적으로 경제적 제재를 완화되고, 외교, 인권, 경제 부문에서 점차 국가적 위상도가 높아지는 듯도 했다.

 

50년 이상 군부가 집권해온 미얀마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이 전체 의석 59%를 차지하면서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2020118일 또 다시 치러진 총선에서도 상, 하원 모두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군부 때 제정된 헌법에 군부는 무조건 상, 하원 의석의 25%를 사전 할당받는 불합리한 조항이 있다. 또 내무, 국방, 국경경비 등 3개 치안 관련 부처 수장까지 맡는 듯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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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레호수 [촬영=윤재훈]

 

군부는 허약해진 자신들의 당을 인정할 수 없어서인지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20212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막 자라나던 민주주의 싹을 무참히 군홧발로 짓밟아 버렸다.

 

보석류와 석유 등 자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 메콩강 유역 나라 중 태양열 발전률이 가장 높으며, 빈부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

 

천불천탑 황금빛 째디들이 즐비한 나라, 매일 비손을 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 나라의 오랜 수도였던 <랑군(양곤)>, 우리나라 대통령과 장관들이 순방을 갔다가 아웅산 폭탄 테러를 당한 나라.

 

버마 군대의 설립자로 미얀마의 국부로 여겨지지만 암살당한 아웅 산 장군, 그의 딸로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아웅산 수치, 하지만 소수 민족인 로힝야 학살의 방관자로 지탄을 받기도 하는 그녀.

 

미얀마에서 가장 큰 호수로 외발 노를 저으며 동그란 그물로 고기를 잡은 모습이 특이한 <인례호수>, 해 질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렵한 전통 배들이 모습이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호반의 도시. 널린 수상 작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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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비율 [촬영=윤재훈]

 

12-13세기에 캄보디아 지역의 크메르 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국력이 강성했던 <바간 왕국>, 귀족들과 왕실 인사들은 앞을 다투어 수도 자체에만 1만 개가 넘는 사찰과 문화재를 만들어 내며 찬란한 테라와다 불교 문화를 이루었던 왕국, 그러나 13세기 말, 몽골군들이 지속적으로 침공해 오면서 1287400년 만에 무너져 버린 나라. 찬란한 불탑 아래 우리나라 3국 시대보다 더 허망하게 무너진 왕국.

 

이후 몽골족과 함께 들어온 샨족은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며 미얀마 북서부와 동부 지역을 장악하며 14세기 말 잉와 왕국한따와디 왕국이 주류를 이루며 성장한다. 미얀마 서쪽에서는 잠시 통일 왕조가 들어서는가 하더니 벵골 술탄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잉와 왕국이 망하고 샨족들로 구성된 한따와디 왕국이 1555년까지 미얀마 상부 대부분을 지배한다.

 

그 후 250여 년 동안 수많은 왕국이 난립하며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 군함들이 아시아를 향해 떠났지만 16세기까지 혼란기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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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원과 째디의 숲 [촬영=윤재훈]

 

여기에 대부분 국가가 다민족 국가들이라 전쟁도 벌어졌으나, 다양한 민족 간의 교류와 문화적 통일도 일어났다. 따라서 이때를 <미얀마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법전이 생겨나고 종교 체계가 잡히며 대규모 사원들이 세워지는 등,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한때 잉와 왕국의 봉신국이었던 따웅우 왕국은 점차 힘을 길러 잉와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가 싶더니, 1531년 즉위한 젊은 왕인 따빈슈웨티는 한따와디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명성을 높인다. 남부의 몬족 세력들은 포르투갈 용병들을 고용해 물리쳤다. 주변의 왕국들은 이에 놀라 서로 동맹을 맺었으나 이를 모두 격파하고 통합시켰다. 여기에 1547년 몬족을 지원하던 아유타와 왕국까지 공격하여 비록 함락에는 실패했지만, 철저하게 아유타야 군을 파괴하고 사령관이었던 아유타야 왕비 수리요타이를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버마로 돌아온 왕은 포르투갈인 근위장교와 사냥을 하다가 암살을 당한다.

그 후 다시 분열되는 듯했으나 이복형인 바인나웅이 왕으로 올라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바인나웅은 지금 여행자의 천국으로 알려진 치앙마이의 란나 왕국, 그 아래에 있는 아유타야 왕국과의 백상(白象) 전쟁, 란상 왕국 등 여러 왕국을 정벌하며, 잠깐 동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룬다. 그러나 1581년 바인나웅 왕이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가 정복 전쟁으로 인해 지나친 세금을 부과하고 철권통치를 한 터라 귀족들과 백성들의 불만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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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난다 사원 사면에 있는 황금 불상 [촬영=윤재훈]

 

이후 들어선 꼰바웅 왕조 6대 국왕인 보도파야의 치세에 최전성기에 달해 1784년 아라칸 왕국을 병합하고, 10만이 넘은 대군으로 지금의 태국인 시암을 침공한다. 하지만 유럽식 신식무기를 앞세운 라마 1세의 짜그리 왕조의 군대에 처참하게 무너진다.

 

설상가상으로 아라칸의 통치까지 실패하며 반란을 일으킨 잔당들이 이웃한 영국령 인도로 도주하자, 국경을 넘어 공격하다 영국군과 충돌하여 긴장이 증폭되게 된다. 토지에 비해 인구가 부족한 동남아에서는 지배의 개념은 땅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국경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개념은 중동, 유럽과 동북아에서 형성되어 관료제가 발달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얀마의 귀족층들은 쇄국을 고집하고 주변에서 물결치던 서구 문물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지만, 왕실 자체적으로 서구식 공장을 지으며 시암의 근대화 개혁 모습을 보고 무기도 서구식 체제로 생산시도도 하였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것을 개혁의 발판이 아닌 돈줄로만 보고 오히려 공장을 짓는 데 도움을 준 서구인들과 유착하면서 개혁에 실패하고 만다. 그다음 왕에 오른 버기도 역시 이러한 사태들이 계속되고,버마가 아쌈의 타이계 왕국인 아홈 왕국까지 복속시키자 긴장은 극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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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레 파고다, 양곤  [촬영=윤재훈]

 

그리고 마침내 1824년1차 영국-버마 전쟁 이 일어난다. 이것은 당시 대영제국이 청나라 침략을 위해 미얀마를 전략 요충지로 보고 있었는데, 좋은 빌미가 생긴 셈이다. 신무기를 앞세운 영국군은 버마에 선전포고를 내리고 1824년 2년간 첫 전쟁에서 물메인 지방을 빼앗고, 1852~53년에 벌인 2차 전쟁에서는 저지대 삼각주를, 마침내 1885년에는 고지대까지 점령하면서 미얀마를 병합해 버린다. 이후 인도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가 1837년 버마인들이 자치를 허용해달라고 하여 다시 떼어낸다.

 

식민지의 중심도시 역시 영국에 의해 원래 수도였던 만달레이에서 바다에 가까운 양곤으로 옮겨졌다. 꼰바웅 왕조 최후의 임금인 티바 왕은 인도 서해안의 작은 어촌인 라트나기리로 끌려가서 31년간 유폐 당한 채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1942년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과 태국의 침공으로 일본 군정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남부 일부 영토는 태국에게 병합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1943년 일본이 버마을 버마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를 시켜주자 ’아시아의 구세주‘라 환영하였으나, 곧 일본의 지령을 받는 친일파 바 마우에 의해 꼭두각시 괴뢰(傀儡)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아웅 산과 우누, 네윈에 의한 ’30인의 동지라는 반파시스트 인민 자유 동맹이 결성된다. 이들은 일본군과 협력했으나 전쟁 말기, 영국군이 버마를 재탈환하고 만달레이 인근까지 진격해오자 바로 편을 바꿔 영국군에게 붙어 일본군을 몰아낸다 

전체댓글 2

  • 93536
임인출

버마에 대해서 공부하게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군부 집권과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볼때 땅덩어리가 꽤 큰가봐요?
아웅산 수지가 사는 나라 근데 다시 쿠데타로…

댓글댓글 (1)
지재

임인출   >   네 군인들의 나라입니다.
나라가 상당히 큽니다, 반은 카렌족
반군들이 살고요

댓글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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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의 세계오지 도보순례④] 황금불탑의 나라, 미얀마의 바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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