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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제로웨이스트 등산 문화 만들며 관악산 쓰레기 줍기 활동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서스테인플루언서가 4월 26일, 맑은 봄 하늘 아래 관악산 쓰레기 줍기 활동을 진행했다. 이날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서울 남부 지역의 사랑받는 명산, 관악산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운영진과 회원을 포함한 총 10명이 참여했으며, 정상팀과 둘레길팀으로 나뉘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약 3시간 동안 산 곳곳을 돌며 숨은 쓰레기를 수거했다. 정상팀은 관악산 연주대 정상 부근까지 오르며 경로 주변의 쓰레기를 주었고, 둘레길팀은 관악산 공원입구에서 호압사까지의 경로로 이동하며 구석구석 숨겨진 쓰레기들을 주었다. 이번 활동에 참여한 회원은 “관악산을 찾은 등산객분들이 정말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지나가시는 분들이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좋은일 하시네요' 라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셔서 평소보다 훨씬 더 뿌듯했고, 에너지가 더 생겨서 즐겁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관악산 쓰레기 줍기에서는 음료수 페트병, 담배꽁초, 사탕 봉지, 신발 깔창, 광고 전단지 등 다양한 생활쓰레기들이 발견됐다.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이번 활동에서도 제로웨이스트 산행을 이어가며, 일회용 플라스틱 대신 개인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생분해 봉투와 면장갑 등을 활용해 쓰레기 수거 활동을 진행했다.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 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influencer를 합친 이름으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상 속 작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앞으로도 환경 보호와 소외된 이웃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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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다이브, 스쿠버 다이빙 팀 'SEA U AGAIN' 해양정화 활동 펼쳐
스쿠버 다이빙 팀 리다이브가 지난 3월 15일, 강원도 고성군 아야진항 아야진 다이빙 리조트에서 'SEA U AGAIN' 해양정화 첫 활동을 성공리에 마쳤다고 밝혔다. 이번 'SEA U AGAIN' 활동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해양 정화 및 환경 보호 의식 확산을 목표로 바다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리다이브가 SEA.P.R 팀과 함께 약 25명이 참여했고, 수중 정화 활동을 하는 '플로빙 팀'과 방파제 주변을 정화하는 '플로깅 팀'으로 나누어 총 약 1톤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했다. SEA.P.R 다이빙 팀은 스킨스쿠버에 관심 많은 소방대원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민간 단체로, 해양 쓰레기 수거를 비롯한 해양 생태계 교란 유해 생물 제거 등 다양한 환경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준행 이야진 다이빙 리조트 대표는 "바쁜 일정에도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이번에는 SEA U AGAIN의 일원으로 함께했지만, 앞으로는 고성 주민으로서 지역 환경 보호와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리다이브 김나은 강사는 "이번 첫 해양 정화 활동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매월 최소 1회 이상 정기적 해양 정화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또한 "다음 활동은 4월 11일 고성 로맨틱 다이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리다이브는 지난 3월 1일 삼일절을 맞아 사이판 해역 내 수중 위령비 두 곳을 정화하는 활동을 펼치며, 일제강점기에 희생된 선조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감사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SEA U AGAIN 활동 희망자는 관련 SNS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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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올해도 에너지 취약 계층 위해 구룡마을 곳곳에 온기 전달
환경과 사회에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매월 1회, 사회공헌 및 환경 정화 활동을 하고 있는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가 에너지 취약 계층을 위해 지난 9일 개포동 구룡마을 일대에서 연탄 나눔을 진행했다. 이번 연탄나눔 활동에는 서스테인플루언서를 비롯해 처음 참여하는 게스트까지 47명이 참여해 총 2000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연탄으로 겨울을 보내야하는 가구는 전국에 7만 4000여 가구이며, 그 중 대부분은 독거 어르신이다. 서울연탄은행 관계자는 “연탄 1장이면 어르신들이 5~6시간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고 설명하며 "하루 4~5장의 연탄으로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데, 오늘 여러분이 나눠준 연탄이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연탄 가격은 지난 번 850원에서 또 한 번 상승해 이제 연탄 1장당 가격은 900원이다. 하루에 5장의 연탄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150장의 연탄이 필요하고 금액으로는 135,000원이다. 에너지 취약 계층에게 부담되는 금액이다. 그런데 해마다 도움을 주고 있는 연탄은행도 올해 상황은 녹록치 않다. 경기 침체 탓으로 연탄 기부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데다 올해는 단가까지 오르면서 작년 10월 말 대비 연탄 기부량은 절반도 못 미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번 연탄 나눔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힘들긴 했지만 제 한 몸 바쳐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게 저한테는 엄청난 추억이 되기도 했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며, "사실 엄마가 가자고 해서 오게 됐는데, 처음에는 별로 재미없을 줄 알았지만 막상 해 보니까 재미있었고, 마음도 뭉클해지고 기분도 좋아져서 다음에 또 하고 싶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스테인플루언서의 대표리더(활동명:서스테인)는 "매년 연탄 나눔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은 부모님과의 활동을 통해 '이웃을 위한 나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연탄 나눔 활동도 많은 분들이 성금을 보내주셔서 총 1,805,678원이 모였고, 덕분에 2000장의 연탄을 구입해 어르신들께 전달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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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 교육 수강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활동 중인 서스테인플루언서가 지난 21일, 마인드앤매뉴얼이 주최하는 스마트 심폐소생술 교육을 수강했다고 밝혔다.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 하임리히법을 배워 주변에서 일어나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고,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자 이날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을 진행한 이승현(현직 간호사) 강사는 “일반인 심폐소생술을 시행에 따른 생존율은 하지 않았을 때의 두배,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했을 때의 생존율은 4배로 증가한다”며 심폐소생술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교육은 ▲심폐소생술의 이론과 사례 ▲반응 확인 및 도움요청 ▲성인 가슴압박소생술 및 인공호흡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 ▲소아/영아 심폐소생술 ▲기도폐쇄 처치방법 순으로 진행됐다. 교육은 이론과 함께 충분한 실습을 통해 실제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가슴압박소생술은 단순하지만 주의사항과 요령이 필요한 기술로서 마인드앤매뉴얼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게임으로 쉽고 재미있게 숙지할 수 있도록 했다. 심폐소생술의 단계는 ▲환자확인 ▲구조 요청 ▲가습 압박 ▲심장 충격 ▲전문 소생 순이다. 성인의 기도이물폐쇄는 대부분 음식물 섭취로 인해 발생하며, 기도이물폐쇄 환자에게는 신속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이날 교육에서는 기도이물폐쇄 시 꼭 필요한 하임리히법을 배웠다. 하임리히법은 직접 사람에게 실습할 수 없으므로 마네킹과 도구를 통해 실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이 끝난 후 서스테인플루언서의 한 멤버는 “그동안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지만 선뜻 배우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며, “교육을 듣기 전에는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내가 시행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는데 교육 후 ‘누구나 배워서 소중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로 바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마인드앤매뉴얼은 행정안전부 및 대한심폐소생협회 인증 교육기관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해 기초의료기술을 전달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응급처치술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는 비전 아래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초의료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학습 시 확실한 체득을 목표로 전문적인 응급처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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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연탄나눔 활동으로 에너지 취약계층에 온기 전달
환경과 사회에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모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가 오늘 18일, 서울 성북구 정릉1동 일대에서 연탄 나눔을 진행했다. 이번 연탄나눔 활동에는 서스테인플루언서를 비롯해 자원한 게스트까지 총 52명(활동명: 서스테인, 띠아모, 시야흐름, 애슐리, Ray P, 20세기 소년, 가옥대장, 경이로은, 권글, 그농, 긔차니즘갬성, 까망토, 꼬북이, 다육이 키우기, 더머, 덤앤, 디니, 루디, 르네, 마장동 양귀비, 메리골드현짱, 무니, 미라클하트, 바늘꽃, 비비, 사스미, 스티브, 아침햇살타고, 알이즈웰, 엄지척튜브, 와이이킴, 유라맘, 제이제이, 지동이, 짜르방, 태극기, 태극기아버지, 태랑이, 하다, 하모니, Eddy, HYEOK!, Jy, way, YS, 토끼, 런, 캡틴,갬성2, 갬성3, 스텔라, 우진)이 참여했다. 이날 후원한 연탄은 총 3000장으로, 현장에서 전달한 연탄은 한 가구당 200~300장씩 9가구에 총 2400장을 전달했다. 서울연탄은행 관계자는 “연탄은 방에 불을 뗄 때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목욕물을 데울 때, 음식을 할 때도 모두 사용이 된다”며, “연탄 1개의 무게가 3.65kg인데 이것은 사람의 체온인 36.5도를 1년 365일 지켜준다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작년대비 물가상승으로 인해 1장에 800원이던 연탄 가격은 50원 올라 850원이다.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하루에 필요한 연탄 수는 4~5장, 한 달이면 150장의 연탄이 필요하다. 금액으로는 127,500원. 에너지 취약계층에게는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경기 침체 탓으로 올해는 연탄기부도 작년보다 절반으로 줄어들어 에너지 취약계층에게는 '사랑의 연탄나눔' 손길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이번 나눔활동에는 특히 어린 친구들의 활동이 눈에 띄였다. 9살 초등학교 2학년생부터 오금중 학생들까지 늦잠 자고 싶은 토요일 아침의 유혹을 뿌리치고 부지런히 정릉동에 모였다. 최연소 참여자인 9살 딸 아이와 함께 처음 참여한 게스트(활동명:경이로은)는 "좋은 날에 좋은 마음의 여행을 다녀온 듯 하다"며, "멤버분들 모두 웃음과 사랑을 함께 나눠줘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참여자(활동명:하다)는 "진짜 기다려 온 활동인만큼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며 "마지막에 간식까지 준비해준 운영진들께 감사드리며, 이번 연탄봉사도 운영을 잘 해주신 덕분에 함께 잘 해낸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서스테인플루언서의 대표리더(활동명:서스테인)는 "이번 활동은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부모님, 학교 선생님과 함께 동참해서 더 에너지 넘치고 의미있는 활동이었다"고 전하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으로 연탄성금은 총 3,310,000원이 모금되었고, 덕분에 연탄은행에 3000장의 연탄을 후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연탄 후원금과 간식비로 사용하고 남은 모금액 51만원은 운영진 회의 결과, 온정의 손길이 필요한 다음 활동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후원금 명단 fan지한, 홍지정, 유재준, 김민형, 김성용, 장한별, 윤성무, 진병순, 김미현, 유달리,윤정아, 아침햇살타고, 김영은, 하다, 윤재은, 알이즈웰, 뚤12, 가옥대장/가옥부동산, 김종묵(맵시옴므), 양기열(트리니티의원), 이현영, 이희규, 구본혁, 박성춘, 서규혁(오금중), 로야스, 유연경, 미라클하트(단체), 노경희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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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누군가의 생명줄을 붙잡는 밥퍼나눔활동 진행
환경과 소외된 이웃에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인 서스테인플루언서가 10월 나눔 활동으로 밥퍼 나눔을 진행했다 이번 나눔 활동은 지난 1월, 2월 밥퍼 나눔 활동에 이은 세 번째 활동으로 지난 10월 28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배식 하는 활동으로 진행됐다. 밥퍼나눔운동본부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벽마다 자원봉사자들과 식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하루를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소중한 밥 한 끼를 전하는 일을 해 오고 있다. 밥퍼나눔은 매일 아침(오전7시-8시), 점심(오전11시-오후1시)으로 나눠 두 번의 나눔으로 진행되며 자원봉사는 새벽 6시부터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이번 밥퍼나눔 활동에는 서스테인플루언서 운영진과 회원을 비롯해 게스트까지 총 22명이 참여했으며, 400여명의 무의탁 어르신들에게 점심 식사를 준비해 제공했다. 이번 활동을 마친 최연소 참여자 캡틴(닉네임, 초등학교 5학년)은 "엄마랑 청주에서 올라오느라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오는 것도 힘들었고, 봉사 활동도 직접해보니 힘들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참여하고 싶다"며 참여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60대 여성 참여자는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같이 하는 활동이 재밌다"며 "젊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는 일에 웃으면서 함께하니 참 이쁘고 보기 좋다"고 참여소감을 전했다. 배식을 받고 식사를 마친 80대 어르신은 "사람이 돈이 없어서만 밥을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도 혼자서 밥을 먹기 힘들다"며 "집에 있으면 혼자이지만, 이곳에 나오면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덜 외로워서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여기는 나를 비롯해서 많은 외로운 노인들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곳인데, 그 희망을 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밥퍼 철거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달했다. 밥퍼나눔운동본부 김미경 본부장은 "밥퍼 봉사는 단순히 한끼 식사를 나누는 봉사 활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줄을 붙잡는 고귀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대단한 건, 다 각자 사연이 있고 힘들고 아픈데도 봉사 활동을 하러 온다"며 밥퍼나눔활동을 자원하는 봉사자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활동을 희망하는 사람은 ESG코리아뉴스 또는 서스테인플루언서 인스타 계정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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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아동청소년 위한 바자회 준비 활동 참여
-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봉사 커뮤니티 ‘서스테인플루언서’가 3월 17일, 서울 은평구 꿈나무마을 초록꿈터에서 진행된 바자회 준비 활동에 참여했다. 이번 바자회는 아동청소년 복지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행사로,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이 애슬레저 브랜드 젝시믹스의 기부물품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자회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초록꿈터 강당에서 열린다. ‘서스테인플루언서’ 봉사자들은 본 행사 하루 전인 17일 현장을 찾아 바자회 공간을 정리하고, 기부물품을 종류별로 구분해 진열하는 작업을 도왔다. 다양한 의류와 물품들이 효율적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공간 정비와 분류 작업에 힘을 보태며, 원활한 바자회 운영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서스테인플루언서’ 관계자는 “단순한 봉사를 넘어,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길 수 있는 활동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이며 자원순환 할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활동을 희망하는 사람은 ESG코리아뉴스 또는 서스테인플루언서 인스타 계정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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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아동청소년 위한 바자회 준비 활동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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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쓰레기 없는 쾌적하고 안전한 해변을 위한 해안가 정화활동 실시
-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활동 중인 서스테인플루언서가 ESG코리아타임즈와 함께 지난 22일, ‘쓰레기 없는 안전하고 쾌적한 해변’을 만들기 위해 해안가 정화활동을 실시했다. 이번 해안가 정화활동은 실미도, 무의도, 영종도 마시안해변, 을왕리 해수욕장, 완산해수욕장 등 7곳을 사전답사해 해양 쓰레기가 가장 많은 곳인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을 선택해 진행됐다. 인천중구청과 해양수산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해안가 정화활동을 하는 봉사단체가 많아져 을왕리 해수욕장을 비롯한 인천지역 해안가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으나 하나개 해수욕장은 조금 달랐다. 하나개 해수욕장은 다른 지역보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부피가 큰 스티로폼, 타이어, 패딩, 이불 솜, 유리조각, 녹슨 철조각, 일회용 폭죽, 미세한 쓰레기 등 각종 생활 쓰레기가 난무했다. 이들은 부피가 큰 쓰레기들을 담기 위해 큰 사이즈의 포대자루 6개를 준비했으나, 1시간 만에 모든 포대에 쓰레기가 가득 찼다고 전했다. 제일 많이 나온 쓰레기 순으로는 스티로폼, 페트병 등의 폐플라스틱, 담배꽁초 등이었다. 이번 해안가 정화활동에 참여한 30대 여성 참여자는 "왜 이런 것이 해변에 있는것인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너무 황당한 쓰레기들이 많이 있다"며, "페트병, 담배꽁초는 자주 보는 쓰레기이긴 한데, 양말, 남성속옷, 베개, 이불 솜, 김치통 이런 쓰레기들은 왜 해변가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또, 30대 남성 참여자는 "해양쓰레기가 유독 무겁고 부피도 커서 일반 쓰레기 줍기보다 힘이 많이 들지만, 바다와 석양을 바라보며 정화 활동을 하다보면 자연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매력이 매우 크다."며, "좀 더 많은 분들이 쓰레기를 이렇게 무분별하게 버리면 안된다는 의식을 가지면 좋겠고, 또 이미 버려진 쓰레기들은 누구라도 먼저 치우려는 의식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앞으로도 매주 새로운 '생활 속 탄소 배출 줄이기 챌린지'를 진행하며, 환경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프로그램을 매월 활발하게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서스테인플루언서로 활동을 희망하는 사람은 ESG코리아타임즈 인스타 계정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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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쓰레기 없는 쾌적하고 안전한 해변을 위한 해안가 정화활동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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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우간다(Uganda),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
-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는 1970년 1월 8일 우간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우간다 수의사이자 멸종 위기에 처한 마운틴 고릴라, 야생 동물, 아프리카 가축과 인간의 공존을 실천하는 환경운동가로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Conservation Through Public Health)’의 설립자이다. 그녀는 우간다 최초의 야생 동물 수의사로, BBC 다큐멘터리 ‘글래디스 아프리카 수의사(Gladys African Vet)’에 출연했다. 또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애니멀 플래닛, M Net 및 우간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우간다의 캄팔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동물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고, 야생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애완동물과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경험이 바탕이 되어 12살 때 수의사의 꿈을 키웠다. 야생동물클럽을 조직하여 퀸 엘리자베스 국립 공원(Queen Elizabeth National Park)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간다의 야생 동물, 생물다양성,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8세가 되면서 자연보호 활동을 시작했고, 25세 때 우간다 야생 동물 관리국의 수의사가 되었다. 이후 야생동물국은 우간다 국립 공원과 합병되어 우간다 야생 동물 관리국이 되었다. 우간다는 드넓은 야생 동물 보호지역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 사회와 야생 동물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우간다의 야생 동물 관리와 시골의 공중 보건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데 노력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전문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영국 런던대학교 왕립 수의대에서 수의학 학사를 졸업하면서부터이다. 이후 2003년 노스 캘로라이나(North Carolina) 주립대학에서 수의학 석사를 취득하면서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녀가 런던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연구하는 동안, 야생 고릴라들이 자연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기생충에 관해 연구했다. 또한 관광객과 생활하는 고릴라와 관광을 하지 않고 산악에서 살아가는 고릴라들이 가지고 있는 기생충과 박테리아를 연구했다. 그녀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고릴라가 관광객들이 방문하지 않은 산악 고릴라보다 기생충에 대한 부담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관광객이 산악 고릴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녀는 인간으로부터 마운틴 고릴라로 전파되는 기생충 전파가 동물생태계에 위험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글래디스 칼레마-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 로렌스 지쿠소카(Lawrence Zikusoka), 스티븐 루방가(Stephen Rubanga)와 함께 아프리카의 인간과 생태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CTPH)’을 설립했다.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은 2003년 설립되었으며, 인간으로부터 유발되는 질병이 고릴라와 기타 야생 동물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우간다와 미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로,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는 이 조직의 대표를 맡았다.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은 2015년 ‘고릴라 보존 커피(Gorilla Conservation Coffee)’라는 협정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사회의 아라비카 커피 작물에 대한 국제 시장 가격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경제 생태계를 개선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소득의 증가를 통해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 지역 사회의 질병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환경 개선을 통해 야생에서 살아가는 고릴라에게 질병의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관광객들은 고릴라가 지역 사회를 지나가며 관람 기회를 제공할 때마다 약간의 관람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 수입을 통해 생활 환경 개선에 사용한다. 산악 고릴라 트레킹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농업과 목축에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 경제 기반을 다양화했다. 하지만 농업만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야생 동물의 존재에 의존하는 사람들과 이해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릴라와 야생 동물들은 종종 인간의 정착지로 몰려와 농작물과 가축을 파괴해 지역 농민들로부터 갈등을 유발했다. 주민 갈등과 사회적 보상 정책의 부재는 야생 동물에 대한 지역주민의 적개심을 부추기고 많은 야생 동물 보호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되기도 했다.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CTPH)은 스스로를 야생 동물 보호에 적극적인 참여자로 보았다. 이들 단체는 공공 보건과 야생 동물 보호 프로그램에 적절해 개입해 갈등을 해소할 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 모두의 질병 발생에 대한 새로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중 보건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를 치료와 위생 감시자로 참여시켜 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하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 야생 동물, 가축 등의 질병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정보 및 교육 캠페인을 통해 공공 보건과 지속 가능한 환경을 통해 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녀는 2009년 환경 보존 운동을 통해 휘틀리 금상(Whitley Gold Award)을 수상했고, 2018년에 미국과 우간다 간의 환경 보존에 대한 공조를 통해 "국제 환경 보호 및 보존에 대한 독특한 공헌"을 인정받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시에라 클럽에서 지구 보호상(Earth Care Award)을 수상했다. 2021년 12월에는 UN환경계획(UNEP)의 과학 및 혁신을 위한 지구의 챔피언으로 선포되었고, 2022년 4월 아프리카 보호지역 안팎에서 인간과 야생 동물이 공존하며 삶의 질을 개선한 공로로 ‘에든버러 메달’을 수상했다. 그녀는 인간과 야생 동물 사이의 공존을 이끌며 지원하는 지역 사회 주도의 '원 헬스(One Health)' 프로그램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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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우간다(Uganda),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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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모든 걸 내어준 억만장자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
- 세계에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은 인간이지만 마음은 천사’가 있다. 부자이면서도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 그가 바로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 (Charles Francis Chuck Feeney)’이다. 척 피니는 1931년 미국 뉴저지의 허름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10살 때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판매했고 대학생 때는 샌드위치 장사를 했다. 그는 미국 공군 무선 통신사로 복무했으며,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사람이다. 그는 군 제대 후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1960년 대학 동창인 로버트 워런 밀러(Robert Warren Miller)와 면세점 그룹 ‘DFS’(Duty Free Shoppers)를 설립하여 ‘공항 면세쇼핑’의 개념을 처음으로 개척하였다. 20살에 ‘공항 면세쇼핑’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에 성공했고, 40대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1929년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을 겪으면서 가난하지만 서로 돕는 공동체 의식을 배웠다. 이러한 영향은 봉사활동을 실천적으로 행해왔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1997년 자신의 선행이 드러날 때까지 수년 동안 사회 곳곳의 어려운 사람과 기관에 은밀히 재산을 기부해왔다. 그가 실천적으로 행한 선한 영향력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척 피니 (Feeney)가 비즈니스 분쟁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숨겨져 있던 비밀장부가 발견되면서 그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검소한 생활과 사회봉사를 위한 실천적 삶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부를 축적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사회적 실천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는 8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였으며 현재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임대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차나 사치품도 없다. 비행기도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가 전부다. 그는 “두 발에는 한 켤레 신발밖에 신을 수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천국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라는 말을 남겨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1982년에는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Atlantic Philanthropies)를 설립했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 “전 재산 80억 달러를 모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천에 옮겼다. 이 재단의 첫 수혜자는 대학이었다. 척 피니는 모교인 코넬대와 뉴욕대에 기부금을 전달했으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이었다. 대개 기부자가 대학에 기부할 경우, 기부자의 이름을 대학에 남겨 기부자의 선행을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척 피니는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재단의 CEO 크리스토퍼 웨츨리(Christopher G Oechsli)는 “척 피니의 기부를 알리거나 이름이 붙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기부 활동은 40년 동안 이어졌다. 2020년 9월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해체 문서에 서명하면서 “이 일을 마무리하게 돼 매우 행복하다”고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의 스티븐 베르토니(Steven Bertoni) 시니어 에디터는 “그는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척 피니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탄생에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또 다른 기부자 워렌 버핏은 “척 피니는 더 기빙 플레지를 만드는데 영감의 초석이 되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더 기빙 플레지는 2010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 대부호들이 사후나 생전에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는 운동이다. 빌 게이츠는 “척은 다른 자선가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샌디 웨일(Sandy Weill) 전 웨일 코넬 메디슨(Weill Cornell Medicine) 의장은 “그는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고 모든 걸 내줬다”고 찬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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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모든 걸 내어준 억만장자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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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왕가리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 왕가리 무타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1940년 4월 1일~2011년 9월 25일)는 케냐의 환경운동가, 정치인, 대학 교수이다. 그녀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여성 처음으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녀는 그린벨트 운동(The Green Belt Movement), 불굴: 회상록(Unbowed: A Memoir), 아프리카를 위한 도전(The Challenge for Africa), 지구 재충전( Replenishing the Earth) 등 네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녀가 추구했던 그린벨트 운동은 여러 책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말보로 프로덕션에서 ‘뿌리 내리기: 왕가리 마타이의 비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왕가리 마타이는 1940년 4월 1일 아프리카 케냐의 시골 지역인 니에리(Nyeri)에서 태어났다. 당시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그녀의 가족은 그곳에서 여러 세대를 걸쳐 살았다. 그녀는 케냐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민족 ‘키쿠유 족’의 딸로 태어났다. 케냐가 영국 식민지 지배로 부터 벗어날 시기 ‘톰 엠보야’를 비롯한 케냐의 정치인은 우수한 학생들에게 서구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의 상원 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도 케냐의 정책을 지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타이는 약 300명의 장학생 중 가운데 한 명이 되어 1960년 9월 미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는 1964년 캔자스 주 애치슨에 있는 마운트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칼리지(Mount St. Scholastica College)에서 생물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과학 대학(University of Science)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1966년 피츠버그(Pittsburgh)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독일과 나이로비 대학에서 박사 과정도 밟았다. 1971년에 나이로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명되어 학장까지 역임했다. 그녀는 2002년 예일 대학교의 지속 가능한 삼림을 위한 국제 학회 객원 교수(Visiting Fellow) 초청 자격을 얻었다.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여성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마타이 교수는 1976년과 1977년에 각각 수의학과 교수와 부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이 지역에서 해당 직위를 얻게 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케냐의 산림이 불과 몇 년 만에 크게 훼손되어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정부가 산업용 경작지를 넓히려고 나무를 벌채한 탓에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했던 울창한 숲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린벨트 복원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것은 여러분의 땅입니다. 여러분의 땅인데도 여러분은 이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땅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 여러분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라며 그린벨트 운동 동참에 호소했다. 그녀는 “정부 탓만 하지 말고, 불평을 넘어 행동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그녀의 간절한 호소와 설득은 마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자연을 지키는 일에 동참하는 ‘녹색 투사’로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이 케냐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마마미티(나무들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은 가난한 여성들이었다. 그녀는 파괴된 산림을 회복하기 위해 1977년 6월 5일 무화과나무 등 7그루를 심으며 산림녹화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또한 1977년 사막화 방지를 위해 전국에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그린벨트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나무 심기 운동은 30년간 이어지면서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녀가 환경운동을 시작하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4,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녀는 케냐의 산림이 파괴된 것은 자연의 훼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망가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과 함께 살아온 숲이 없어지면 산사태가 일어나고, 수원도 말라버린다는 것이었다. 산림의 파괴로 여성들은 점점 더 먼 곳으로 물을 찾아 나갔으며 나무가 없어지자 땔감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자연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먹이가 없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가고 사람들은 식량부족 사태에 시달렸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자연의 복원뿐이었다. 그녀는 녹색 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연을 회복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그녀의 그린벨트 운동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뿐 아니라, 여성의 인권, 학대와 무기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용기와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케냐의 미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마타이는 케냐 국립 여성 협회(Maendeleo Ya Wanawake) 의장을 지냈으며, 1997년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정당이 그녀의 입후보를 철회하면서 불발되었다. 그녀는 다니엘 아랍 모이 정권 때 공정한 선거 요구와 부패 종식, 인종 정치 청산을 요구하다 여러 차례 수감되기도 했다. 그녀는 모이 대통령과 사업 제휴를 맺은 회사들이 60층 규모의 케냐 타임스 미디어 트러스트 복합 단지 건설을 시도하자 이것을 막기 위해 사회 운동을 하였으며, 마침내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마타이는 음와이 키바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2년 총선에서 의원 후보로 출마, 당선되었으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환경부, 천연 자원부, 야생 동물부 차관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그녀는 2003년에 케냐 마진기라 녹색당을 창당했다. 2004년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마타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 위원회는 그녀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는데, 그 이유는 마타이가 케냐에서 과거 압제적인 정권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일어섰고 그녀의 행동이 국가적, 국제적, 정치적 압박으로 부터 저항하는데 기여했으며, 민주주의와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많은 투쟁을 한 공헌이 인정되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1984년 Right Livelihood Award (a.k.a. "Alternative Nobel Prize"), 1991년 골드만 환경상, 1991년 아프리카 상, 1993년 Edingburg Medal (for "Outstanding contribution to Humanity through Science"), 2004년 Petra Kelly Prize, 2004년 Sophie Prize,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왕가리 마타이는 ‘미래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 이순간에 탄생합니다. 장래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다면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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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왕가리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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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브루노 몬테페리(Bruno Monteferri)
- 브루노 몬테페리(Bruno Monteferri)는 페루 출신 환경 변호사이자 케임브리지 대학의 환경 보호 리더십 아쇼카 펠로우(Ashoka Fellow)멤버이다. 아쇼카는 전 세계 95여 개 국가에서 체계적인 솔루션을 실천하고 있는 4,000명 이상의 사회혁신가 모임이다. 그는 2005년부터 페루 환경법 협회(SPDA)에서 일했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보호 스토리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환경보전 리더십의 석사학위를 공부하기 위해 장학금을 받았다. 거기서 동기부여와 행복에 관한 주제와 멀티플레이어 게임과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2012년에 전략적 보전 활동에 시민의 참여를 장려하는 이니셔티브(initiative) 콘세르바모스 포 나츄랄레자(Conservamos por Naturaleza)를 설립했다. ‘우리는 자연을 보존합니다(ConservamosporNaturaleza)’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보다는 자연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과 공감, 연대 정신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2017년부터는 페루 환경법 협회(SPDA)의 해양 거버넌스 이사로 활동했다. 23,000명이 넘는 활동적인 사람들은 환경 보호 협업 디지털 플랫폼에 모였다. 그는 페루 아마존에 있는 시에라 델 디비소르 국립공원의 보호지역 조성에 참여했고, 바후아자소네 국립공원의 예산 삭감에 반대했다. 페루에서 최초로 지역 보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로레토와 같은 지방 공무원의 능력을 강화시키는데 노력했다. 브루노는 녹지 보호의 전통적인 계획을 넘어 녹색 지역의 보전을 위한 자발적인 시민운동을 독려했다. 사람들이 두려움이 아닌 사랑에 의해 주도되는 "애정과 공감의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페루에 환경 문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페루의 생물다양성을 연구하는데 집중했다. 법학 중 환경법을 공부했으며‘ 2004년부터 페루 환경법 협회(SPDA)에서 활동했다. 2012년에 환경협회의 지원을 받아 '우리는 자연을 보존합니다' (ConservamosporNaturaleza)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브루노는 법만으로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시민과 기업이 페루의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도록 노력했다. 페루 땅의 약 60%는 시민에 의해 관리되고 2천만 에이커 이상이 지역사회와 원주민의 소유로 되어있다. 페루의 농업 정책은 토지 소유권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산림을 벌채하고 불태우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것이 페루의 자연을 훼손하는 큰 원인이다. 페루에서 발생하는 삼림 벌채의 주원인은 연간 150,000에이커의 속도로 커져가는 이동식 농업 때문이다. 사람들은 농지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한다. 페루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47%가 산림훼손과 토지 사용의 변화 때문에 일어난다. 페루는 브라질, 온두라스, 필리핀에 이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불법 벌목에 반대하는 활동가가 최소 85명 이상 사망했다. 페루는 지구상에서 다섯 번째로 생물다양성이 높은 국가이지만, 인간 행동과 관련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생태계의 파괴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페루의 환경파괴 원인으로 삼림 벌채, 야생동물 밀매, 수원 오염, 토양손실, 도시화, 과도한 생산량 증가 및 삼림 벌채 등이다. 브루노는 250만 에이커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175개 이상의 이니셔티브를 지원했다. 그는 하즐라 포르 투 올라(Hazla por tu Ola) 캠페인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과 30개 회사의 지원을 받아 페루에 있는 33개의 서핑 장소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를 했다. 또 지역사회와 사설 기관에 환경 보호를 위한 법적 조직적 도구를 제공하여 환경파괴를 억제하고 친환경적 생산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법적 조치의 틀 속에서 시민과 기관이 토지 보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적 재정적 지원을 장려하는 공공 정책에도 앞장섰다. 브루노는 페루 환경 기준의 시행과 준수를 증가시키는 목표로 법적 문제에서 자연 보호 지역 책임자, 판사, 지방 검사 및 경비원을 지원했다. 또한 자연보호 지역 법률에 관한 웹사이트를 설립해 운영했다. 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2016년 기준 브루노의 협업 플랫폼에는 23,000명 이상의 자연보호 활동가들의 스토리가 올라와 있다. 그는 환경 시민의식을 가능하게 하고 집단행동을 통해 자연보호를 가속화 하는 플랫폼과 네트워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브루노는 캠페인, 이벤트, 플라스틱 오염 및 해변 청소에 대한 적극적 홍보를 통해 7,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2,000그루 이상 자생 나무를 함께 심는 "자연을 위한 조림(Reforestamospor Naturaleza)"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원하는 보전 지역의 각 프로필에는 필요한 것을 설명하는 ‘보존을 도와주세요(Help us Preserve)’가 있다. 사람들이 프로필 스토리를 읽은 후 자신들의 재능과 기부할 곳을 찾아 특정 게시물에 게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풀뿌리 이니셔티브에 의해 운영되는 에코 롯지의 리모델링은 그의 웹사이트의 '협력(Colabora)' 섹션 안에서 이루어졌다. 소셜 네트워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그리고 트위터는 자원봉사자를 찾고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했다. 매거진과 월간 뉴스레터에는 협업을 촉진하는 섹션과 '인디고고(IndieGogo)'와 같은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이 포함되어 있다. 브루노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자연환경의 상황을 개선하고, 방문자들 스스로 긍정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개선했다. 그는 변화의 환경 주체가 되고자 하는 시민의식을 고취 시켰으며, 사람들을 연결하고 보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행동을 실천했다. 브루노에게 인간의 내적 본성은 바이오필리아, 즉 인간이 자연과 맺은 유대를 회복하고 삶의 일부로서 우리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노랑 꼬리 원숭이나 하피 독수리 같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닷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는 윈드 서퍼들의 이야기, 지속 가능한 농법을 통해 숲에서 임산물을 키우는 이야기, 도시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자연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 등 작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간의 환경파괴와 그것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본 많은 사람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해 주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일반 사람들을 환경 보호 체인지메이커로 변화시켜 시민 주도의 집단행동을 이끌었다. 그는 ‘플라스틱에서 벗어난 삶(Life Out of Plastic)’의 환경단체, 환경부, 국립보호자연보호청, 야생동물보호청 같은 공공기관과 자연보호 프로젝트에 앞장섰다. 또한 세계적으로 환경 친화 기업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와도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루노는 집단행동을 통해 환경 시민권을 제공하고 보존 속도를 높이는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그는 녹지 보호라는 전통적인 계획을 넘어, 녹지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을 장려했다. 시민운동은 녹지 보호보다 적극적인 환경참여이기 때문이다. 브루노는 2011년 페루에서 자연보호를 위해 가장 인정받는 카를로스 폰세 델 프라도 상을 수상했고, 2013년 독일 교육연구부에서 그린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는 환경법과 보호지역에 관한 5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쿠야파나쿠이집합협회, 농업생태학 TIKARI 개발협회, 아소카 펠로우 조아킨레구아 ANIA 조직의 회원, 세계보전기구 IUCN의 회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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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브루노 몬테페리(Bruno Montefer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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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일회용품 없는 피크닉과 에코플로깅 실시
-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활동 중인 서스테인플루언서 커뮤니티가 지난 17일, ‘일회용품 없는 피크닉 문화 만들기’ 행사와 함께 ‘여의도 한강 공원 일대 에코플로깅’을 실시했다.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날 모임에서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쓰레기 배출을 하지 않는' 피크닉 문화가 가능한지 멤버들이 직접 체험해보고, 여의도 한강 공원 일대를 정화하기 위해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에코플로깅' 활동을 진행했다. 30대 남성 참여자는 "멤버들과 나눌 음식을 돈 주고 사는 것은 매우 쉽지만, 일회용품과 쓰레기를 배출시키지 않고 음식을 구입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며 "음식물을 구입할 때 뜻하지 않게 일회용 쓰레기도 함께 구입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커뮤니티 부운영자는 "가게에서 김밥 포장 주문을 하면서 집에서 사용하던 다회용기를 가져갔는데, 가게 사장님이 오히려 밝은 표정으로 잘 담아주셨다."며 "이렇게 집에서 가져온 용기에 음식을 담아가는 소비자가 꽤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 나무젓가락 대신 집에서 사용하던 젓가락을,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개인텀블러와 개인물컵을, 일회용 물티슈 사용을 줄이기 위해 빨아서 쓸 수 있는 행주 등을 준비해오고, 플로깅을 하며 쓰레기를 담을 봉투로는 흙에서 생분해되는 봉투를 사용했다. 행사에 참여한 40대 여성은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의외로 쓰레기 없었지만, 사람들 발길이 적은 외진 곳은 부피가 큰 쓰레기들이 넘쳐났다."며 "두 명이서 우유를 마시고 우유팩만 나란히 놓고 간 사람들부터 해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너무나 쉽게 방치해두고 자리를 떠버린 사람들의 양심이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은 "오늘 날씨가 여름처럼 무더워서 플로깅을 하며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너무 힘들었지만, 지구를 위해 작은 발걸음을 보탰다는 것에 매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사에 참여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는 앞으로도 매월 1회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에코플로깅, 생활 쓰레기 줄이기 활동, 소외계층 돌보기 등 환경과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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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일회용품 없는 피크닉과 에코플로깅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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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지구온난화’ – 인류에게 10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스웨덴 출신의 19살 환경운동가 툰베리(Thunberg)는 2019년에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 연설에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역대 타임지(Times) 올해의 인물에 최연소로 선정되었다. 세계가 그녀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녀가 고민하고 주장하는 지구 환경문제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환경문제가 되어버렸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력한 이슈를 가지고 지구 환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2018년 9월부터 기후환경 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환경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했다. 그녀는 지구별이 환경적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해 침묵하고 회피하는 정치인과 어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행동했다. 그녀는 환경운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면서 2018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 참가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환경변화 대책에 미온적인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녀의 연설에서 “당신들은 당신들의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처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환경 보호 단체와 대중으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정치 지도자들로 부터 나왔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세상 누구도 툰베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 말해주지 않은 듯 싶다”고 말했다. 푸틴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도 스웨덴 사람들만큼 부유해지고 싶어하는데 태양광 발전만을 통해 그게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미국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도 "밝고 훌륭한 미래를 기원하는 행복한 소녀 같군요."라며 비꼬는 듯한 말로 이슈를 받아쳤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후 변화의 문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툼베리의 말은 강렬한 메시지를 갖는다. 툼베리는 2019년 2월 15일 125개국 2천여 도시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School strike for climate)'를 주도했다. 그녀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장하고 행동했다.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참석을 위해 범선을 타고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하면서 탄소를 쓰지 않고 이동하는 실천적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레타 툰베리는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 1순위로 점쳐지기도 했다. 또한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 다음 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툰베리는 분노 조절 프로그램(Anger Management Program)에 가서 분노 조절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트윗을 남기며 비판에 나섰지만,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 직업을 '분노 조절 프로그램 참석자'로 바꿔 비판에 대응했다. 툼베리는 2020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무 1조 그루를 심어 배출된 탄소를 재흡수하자, 미국 말고 오염이 심한 다른 나라나 살펴보라는 일침을 가했으나, 툰베리는 그의 주장이 이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툰베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기후 변화 이야기를 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맞받아쳤다. 12월 10일 지구온난화 부정론자인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unaru)가 "이런 '꼬맹이'를 언론이 지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 말하자 트위터 프로필 소개를 '꼬맹이(Pirralha)'로 고치는 등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또한 2019년 12월 12일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위에 오르고,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서도 2019년 올해의 인물 10인에 선정되었다. 툰베리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고 직접적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들은 돈을 위한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환상만 늘어놓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며 기후 변화 저지 행동에 하루 속히 참여하라고 주장했다. 그녀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전 세계 기후학자들이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인류에게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녀 또한 강경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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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지구온난화’ – 인류에게 10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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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우간다(Uganda),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
-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는 1970년 1월 8일 우간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우간다 수의사이자 멸종 위기에 처한 마운틴 고릴라, 야생 동물, 아프리카 가축과 인간의 공존을 실천하는 환경운동가로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Conservation Through Public Health)’의 설립자이다. 그녀는 우간다 최초의 야생 동물 수의사로, BBC 다큐멘터리 ‘글래디스 아프리카 수의사(Gladys African Vet)’에 출연했다. 또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애니멀 플래닛, M Net 및 우간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우간다의 캄팔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동물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고, 야생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애완동물과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경험이 바탕이 되어 12살 때 수의사의 꿈을 키웠다. 야생동물클럽을 조직하여 퀸 엘리자베스 국립 공원(Queen Elizabeth National Park)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간다의 야생 동물, 생물다양성,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8세가 되면서 자연보호 활동을 시작했고, 25세 때 우간다 야생 동물 관리국의 수의사가 되었다. 이후 야생동물국은 우간다 국립 공원과 합병되어 우간다 야생 동물 관리국이 되었다. 우간다는 드넓은 야생 동물 보호지역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 사회와 야생 동물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우간다의 야생 동물 관리와 시골의 공중 보건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데 노력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전문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영국 런던대학교 왕립 수의대에서 수의학 학사를 졸업하면서부터이다. 이후 2003년 노스 캘로라이나(North Carolina) 주립대학에서 수의학 석사를 취득하면서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녀가 런던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연구하는 동안, 야생 고릴라들이 자연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기생충에 관해 연구했다. 또한 관광객과 생활하는 고릴라와 관광을 하지 않고 산악에서 살아가는 고릴라들이 가지고 있는 기생충과 박테리아를 연구했다. 그녀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고릴라가 관광객들이 방문하지 않은 산악 고릴라보다 기생충에 대한 부담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관광객이 산악 고릴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녀는 인간으로부터 마운틴 고릴라로 전파되는 기생충 전파가 동물생태계에 위험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글래디스 칼레마-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 로렌스 지쿠소카(Lawrence Zikusoka), 스티븐 루방가(Stephen Rubanga)와 함께 아프리카의 인간과 생태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CTPH)’을 설립했다.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은 2003년 설립되었으며, 인간으로부터 유발되는 질병이 고릴라와 기타 야생 동물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우간다와 미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로,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는 이 조직의 대표를 맡았다.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은 2015년 ‘고릴라 보존 커피(Gorilla Conservation Coffee)’라는 협정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사회의 아라비카 커피 작물에 대한 국제 시장 가격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경제 생태계를 개선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소득의 증가를 통해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 지역 사회의 질병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환경 개선을 통해 야생에서 살아가는 고릴라에게 질병의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관광객들은 고릴라가 지역 사회를 지나가며 관람 기회를 제공할 때마다 약간의 관람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 수입을 통해 생활 환경 개선에 사용한다. 산악 고릴라 트레킹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농업과 목축에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 경제 기반을 다양화했다. 하지만 농업만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야생 동물의 존재에 의존하는 사람들과 이해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릴라와 야생 동물들은 종종 인간의 정착지로 몰려와 농작물과 가축을 파괴해 지역 농민들로부터 갈등을 유발했다. 주민 갈등과 사회적 보상 정책의 부재는 야생 동물에 대한 지역주민의 적개심을 부추기고 많은 야생 동물 보호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되기도 했다. 공중 보건을 통한 보존(CTPH)은 스스로를 야생 동물 보호에 적극적인 참여자로 보았다. 이들 단체는 공공 보건과 야생 동물 보호 프로그램에 적절해 개입해 갈등을 해소할 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 모두의 질병 발생에 대한 새로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중 보건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를 치료와 위생 감시자로 참여시켜 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하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 야생 동물, 가축 등의 질병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정보 및 교육 캠페인을 통해 공공 보건과 지속 가능한 환경을 통해 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녀는 2009년 환경 보존 운동을 통해 휘틀리 금상(Whitley Gold Award)을 수상했고, 2018년에 미국과 우간다 간의 환경 보존에 대한 공조를 통해 "국제 환경 보호 및 보존에 대한 독특한 공헌"을 인정받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시에라 클럽에서 지구 보호상(Earth Care Award)을 수상했다. 2021년 12월에는 UN환경계획(UNEP)의 과학 및 혁신을 위한 지구의 챔피언으로 선포되었고, 2022년 4월 아프리카 보호지역 안팎에서 인간과 야생 동물이 공존하며 삶의 질을 개선한 공로로 ‘에든버러 메달’을 수상했다. 그녀는 인간과 야생 동물 사이의 공존을 이끌며 지원하는 지역 사회 주도의 '원 헬스(One Health)' 프로그램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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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우간다(Uganda),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Gladys Kalema-Zikus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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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모든 걸 내어준 억만장자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
- 세계에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은 인간이지만 마음은 천사’가 있다. 부자이면서도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 그가 바로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 (Charles Francis Chuck Feeney)’이다. 척 피니는 1931년 미국 뉴저지의 허름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10살 때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판매했고 대학생 때는 샌드위치 장사를 했다. 그는 미국 공군 무선 통신사로 복무했으며,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사람이다. 그는 군 제대 후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1960년 대학 동창인 로버트 워런 밀러(Robert Warren Miller)와 면세점 그룹 ‘DFS’(Duty Free Shoppers)를 설립하여 ‘공항 면세쇼핑’의 개념을 처음으로 개척하였다. 20살에 ‘공항 면세쇼핑’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에 성공했고, 40대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1929년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을 겪으면서 가난하지만 서로 돕는 공동체 의식을 배웠다. 이러한 영향은 봉사활동을 실천적으로 행해왔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1997년 자신의 선행이 드러날 때까지 수년 동안 사회 곳곳의 어려운 사람과 기관에 은밀히 재산을 기부해왔다. 그가 실천적으로 행한 선한 영향력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척 피니 (Feeney)가 비즈니스 분쟁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숨겨져 있던 비밀장부가 발견되면서 그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검소한 생활과 사회봉사를 위한 실천적 삶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부를 축적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사회적 실천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는 8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였으며 현재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임대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차나 사치품도 없다. 비행기도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가 전부다. 그는 “두 발에는 한 켤레 신발밖에 신을 수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천국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라는 말을 남겨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1982년에는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Atlantic Philanthropies)를 설립했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 “전 재산 80억 달러를 모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천에 옮겼다. 이 재단의 첫 수혜자는 대학이었다. 척 피니는 모교인 코넬대와 뉴욕대에 기부금을 전달했으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이었다. 대개 기부자가 대학에 기부할 경우, 기부자의 이름을 대학에 남겨 기부자의 선행을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척 피니는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재단의 CEO 크리스토퍼 웨츨리(Christopher G Oechsli)는 “척 피니의 기부를 알리거나 이름이 붙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기부 활동은 40년 동안 이어졌다. 2020년 9월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해체 문서에 서명하면서 “이 일을 마무리하게 돼 매우 행복하다”고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의 스티븐 베르토니(Steven Bertoni) 시니어 에디터는 “그는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척 피니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탄생에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또 다른 기부자 워렌 버핏은 “척 피니는 더 기빙 플레지를 만드는데 영감의 초석이 되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더 기빙 플레지는 2010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 대부호들이 사후나 생전에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는 운동이다. 빌 게이츠는 “척은 다른 자선가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샌디 웨일(Sandy Weill) 전 웨일 코넬 메디슨(Weill Cornell Medicine) 의장은 “그는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고 모든 걸 내줬다”고 찬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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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모든 걸 내어준 억만장자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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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왕가리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 왕가리 무타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1940년 4월 1일~2011년 9월 25일)는 케냐의 환경운동가, 정치인, 대학 교수이다. 그녀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여성 처음으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녀는 그린벨트 운동(The Green Belt Movement), 불굴: 회상록(Unbowed: A Memoir), 아프리카를 위한 도전(The Challenge for Africa), 지구 재충전( Replenishing the Earth) 등 네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녀가 추구했던 그린벨트 운동은 여러 책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말보로 프로덕션에서 ‘뿌리 내리기: 왕가리 마타이의 비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왕가리 마타이는 1940년 4월 1일 아프리카 케냐의 시골 지역인 니에리(Nyeri)에서 태어났다. 당시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그녀의 가족은 그곳에서 여러 세대를 걸쳐 살았다. 그녀는 케냐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민족 ‘키쿠유 족’의 딸로 태어났다. 케냐가 영국 식민지 지배로 부터 벗어날 시기 ‘톰 엠보야’를 비롯한 케냐의 정치인은 우수한 학생들에게 서구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의 상원 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도 케냐의 정책을 지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타이는 약 300명의 장학생 중 가운데 한 명이 되어 1960년 9월 미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는 1964년 캔자스 주 애치슨에 있는 마운트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칼리지(Mount St. Scholastica College)에서 생물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과학 대학(University of Science)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1966년 피츠버그(Pittsburgh)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독일과 나이로비 대학에서 박사 과정도 밟았다. 1971년에 나이로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명되어 학장까지 역임했다. 그녀는 2002년 예일 대학교의 지속 가능한 삼림을 위한 국제 학회 객원 교수(Visiting Fellow) 초청 자격을 얻었다.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여성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마타이 교수는 1976년과 1977년에 각각 수의학과 교수와 부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이 지역에서 해당 직위를 얻게 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케냐의 산림이 불과 몇 년 만에 크게 훼손되어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정부가 산업용 경작지를 넓히려고 나무를 벌채한 탓에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했던 울창한 숲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린벨트 복원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것은 여러분의 땅입니다. 여러분의 땅인데도 여러분은 이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땅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 여러분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라며 그린벨트 운동 동참에 호소했다. 그녀는 “정부 탓만 하지 말고, 불평을 넘어 행동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그녀의 간절한 호소와 설득은 마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자연을 지키는 일에 동참하는 ‘녹색 투사’로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이 케냐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마마미티(나무들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은 가난한 여성들이었다. 그녀는 파괴된 산림을 회복하기 위해 1977년 6월 5일 무화과나무 등 7그루를 심으며 산림녹화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또한 1977년 사막화 방지를 위해 전국에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그린벨트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나무 심기 운동은 30년간 이어지면서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녀가 환경운동을 시작하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4,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녀는 케냐의 산림이 파괴된 것은 자연의 훼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망가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과 함께 살아온 숲이 없어지면 산사태가 일어나고, 수원도 말라버린다는 것이었다. 산림의 파괴로 여성들은 점점 더 먼 곳으로 물을 찾아 나갔으며 나무가 없어지자 땔감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자연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먹이가 없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가고 사람들은 식량부족 사태에 시달렸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자연의 복원뿐이었다. 그녀는 녹색 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연을 회복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그녀의 그린벨트 운동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뿐 아니라, 여성의 인권, 학대와 무기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용기와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케냐의 미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마타이는 케냐 국립 여성 협회(Maendeleo Ya Wanawake) 의장을 지냈으며, 1997년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정당이 그녀의 입후보를 철회하면서 불발되었다. 그녀는 다니엘 아랍 모이 정권 때 공정한 선거 요구와 부패 종식, 인종 정치 청산을 요구하다 여러 차례 수감되기도 했다. 그녀는 모이 대통령과 사업 제휴를 맺은 회사들이 60층 규모의 케냐 타임스 미디어 트러스트 복합 단지 건설을 시도하자 이것을 막기 위해 사회 운동을 하였으며, 마침내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마타이는 음와이 키바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2년 총선에서 의원 후보로 출마, 당선되었으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환경부, 천연 자원부, 야생 동물부 차관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그녀는 2003년에 케냐 마진기라 녹색당을 창당했다. 2004년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마타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 위원회는 그녀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는데, 그 이유는 마타이가 케냐에서 과거 압제적인 정권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일어섰고 그녀의 행동이 국가적, 국제적, 정치적 압박으로 부터 저항하는데 기여했으며, 민주주의와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많은 투쟁을 한 공헌이 인정되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1984년 Right Livelihood Award (a.k.a. "Alternative Nobel Prize"), 1991년 골드만 환경상, 1991년 아프리카 상, 1993년 Edingburg Medal (for "Outstanding contribution to Humanity through Science"), 2004년 Petra Kelly Prize, 2004년 Sophie Prize,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왕가리 마타이는 ‘미래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 이순간에 탄생합니다. 장래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다면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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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왕가리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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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브루노 몬테페리(Bruno Monteferri)
- 브루노 몬테페리(Bruno Monteferri)는 페루 출신 환경 변호사이자 케임브리지 대학의 환경 보호 리더십 아쇼카 펠로우(Ashoka Fellow)멤버이다. 아쇼카는 전 세계 95여 개 국가에서 체계적인 솔루션을 실천하고 있는 4,000명 이상의 사회혁신가 모임이다. 그는 2005년부터 페루 환경법 협회(SPDA)에서 일했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보호 스토리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환경보전 리더십의 석사학위를 공부하기 위해 장학금을 받았다. 거기서 동기부여와 행복에 관한 주제와 멀티플레이어 게임과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2012년에 전략적 보전 활동에 시민의 참여를 장려하는 이니셔티브(initiative) 콘세르바모스 포 나츄랄레자(Conservamos por Naturaleza)를 설립했다. ‘우리는 자연을 보존합니다(ConservamosporNaturaleza)’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보다는 자연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과 공감, 연대 정신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2017년부터는 페루 환경법 협회(SPDA)의 해양 거버넌스 이사로 활동했다. 23,000명이 넘는 활동적인 사람들은 환경 보호 협업 디지털 플랫폼에 모였다. 그는 페루 아마존에 있는 시에라 델 디비소르 국립공원의 보호지역 조성에 참여했고, 바후아자소네 국립공원의 예산 삭감에 반대했다. 페루에서 최초로 지역 보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로레토와 같은 지방 공무원의 능력을 강화시키는데 노력했다. 브루노는 녹지 보호의 전통적인 계획을 넘어 녹색 지역의 보전을 위한 자발적인 시민운동을 독려했다. 사람들이 두려움이 아닌 사랑에 의해 주도되는 "애정과 공감의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페루에 환경 문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페루의 생물다양성을 연구하는데 집중했다. 법학 중 환경법을 공부했으며‘ 2004년부터 페루 환경법 협회(SPDA)에서 활동했다. 2012년에 환경협회의 지원을 받아 '우리는 자연을 보존합니다' (ConservamosporNaturaleza)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브루노는 법만으로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시민과 기업이 페루의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도록 노력했다. 페루 땅의 약 60%는 시민에 의해 관리되고 2천만 에이커 이상이 지역사회와 원주민의 소유로 되어있다. 페루의 농업 정책은 토지 소유권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산림을 벌채하고 불태우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것이 페루의 자연을 훼손하는 큰 원인이다. 페루에서 발생하는 삼림 벌채의 주원인은 연간 150,000에이커의 속도로 커져가는 이동식 농업 때문이다. 사람들은 농지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한다. 페루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47%가 산림훼손과 토지 사용의 변화 때문에 일어난다. 페루는 브라질, 온두라스, 필리핀에 이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불법 벌목에 반대하는 활동가가 최소 85명 이상 사망했다. 페루는 지구상에서 다섯 번째로 생물다양성이 높은 국가이지만, 인간 행동과 관련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생태계의 파괴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페루의 환경파괴 원인으로 삼림 벌채, 야생동물 밀매, 수원 오염, 토양손실, 도시화, 과도한 생산량 증가 및 삼림 벌채 등이다. 브루노는 250만 에이커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175개 이상의 이니셔티브를 지원했다. 그는 하즐라 포르 투 올라(Hazla por tu Ola) 캠페인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과 30개 회사의 지원을 받아 페루에 있는 33개의 서핑 장소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를 했다. 또 지역사회와 사설 기관에 환경 보호를 위한 법적 조직적 도구를 제공하여 환경파괴를 억제하고 친환경적 생산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법적 조치의 틀 속에서 시민과 기관이 토지 보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적 재정적 지원을 장려하는 공공 정책에도 앞장섰다. 브루노는 페루 환경 기준의 시행과 준수를 증가시키는 목표로 법적 문제에서 자연 보호 지역 책임자, 판사, 지방 검사 및 경비원을 지원했다. 또한 자연보호 지역 법률에 관한 웹사이트를 설립해 운영했다. 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2016년 기준 브루노의 협업 플랫폼에는 23,000명 이상의 자연보호 활동가들의 스토리가 올라와 있다. 그는 환경 시민의식을 가능하게 하고 집단행동을 통해 자연보호를 가속화 하는 플랫폼과 네트워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브루노는 캠페인, 이벤트, 플라스틱 오염 및 해변 청소에 대한 적극적 홍보를 통해 7,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2,000그루 이상 자생 나무를 함께 심는 "자연을 위한 조림(Reforestamospor Naturaleza)"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원하는 보전 지역의 각 프로필에는 필요한 것을 설명하는 ‘보존을 도와주세요(Help us Preserve)’가 있다. 사람들이 프로필 스토리를 읽은 후 자신들의 재능과 기부할 곳을 찾아 특정 게시물에 게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풀뿌리 이니셔티브에 의해 운영되는 에코 롯지의 리모델링은 그의 웹사이트의 '협력(Colabora)' 섹션 안에서 이루어졌다. 소셜 네트워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그리고 트위터는 자원봉사자를 찾고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했다. 매거진과 월간 뉴스레터에는 협업을 촉진하는 섹션과 '인디고고(IndieGogo)'와 같은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이 포함되어 있다. 브루노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자연환경의 상황을 개선하고, 방문자들 스스로 긍정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개선했다. 그는 변화의 환경 주체가 되고자 하는 시민의식을 고취 시켰으며, 사람들을 연결하고 보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행동을 실천했다. 브루노에게 인간의 내적 본성은 바이오필리아, 즉 인간이 자연과 맺은 유대를 회복하고 삶의 일부로서 우리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노랑 꼬리 원숭이나 하피 독수리 같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닷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는 윈드 서퍼들의 이야기, 지속 가능한 농법을 통해 숲에서 임산물을 키우는 이야기, 도시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자연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 등 작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간의 환경파괴와 그것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본 많은 사람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해 주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일반 사람들을 환경 보호 체인지메이커로 변화시켜 시민 주도의 집단행동을 이끌었다. 그는 ‘플라스틱에서 벗어난 삶(Life Out of Plastic)’의 환경단체, 환경부, 국립보호자연보호청, 야생동물보호청 같은 공공기관과 자연보호 프로젝트에 앞장섰다. 또한 세계적으로 환경 친화 기업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와도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루노는 집단행동을 통해 환경 시민권을 제공하고 보존 속도를 높이는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그는 녹지 보호라는 전통적인 계획을 넘어, 녹지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을 장려했다. 시민운동은 녹지 보호보다 적극적인 환경참여이기 때문이다. 브루노는 2011년 페루에서 자연보호를 위해 가장 인정받는 카를로스 폰세 델 프라도 상을 수상했고, 2013년 독일 교육연구부에서 그린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는 환경법과 보호지역에 관한 5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쿠야파나쿠이집합협회, 농업생태학 TIKARI 개발협회, 아소카 펠로우 조아킨레구아 ANIA 조직의 회원, 세계보전기구 IUCN의 회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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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사람들] 브루노 몬테페리(Bruno Montefer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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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사회적 관심을 받는 중요한 주제인가?
- ESG가 사람의 관심을 받을 만큼 중요한 주제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답은 ‘예’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환경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기후 온난화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반성 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대량생산에 대량소비는 자본주의의 미덕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물론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지구는 우리의 손에 의해 지켜지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이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업습니다. 이러한 지구 위기에 어린 한 소녀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입니다. “저는 여기 위가 아니라, 바다 반대편 학교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어린 시절과 내 꿈을 앗아갔어요.” - 그레타 툰베리, 2019년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 16살 스웨덴 소녀의 말 한마디가 2019년 가장 큰 글로벌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2020년 다보스포럼의 주요 문제로 쟁점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비단 오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기술이 산업에 기여하고 산업이 생산에 기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은 풍족한 사회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ESG’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지구환경을 비롯한 ESG 문제에 관심을 두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때문입니다. ‘과거 기업은 경제적 성과만을 중요한 목표’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의 생산과 수익은 환경과 투명경영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분별한 생산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은 ESG 기반의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지구가 살고,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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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사회적 관심을 받는 중요한 주제인가?